오랜만에 발표하는 정규 앨범입니다. 4집 이후로 11년 만이네요.
사실 그 사이 온전한 앨범 한 장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생활의 틈틈이 쓰고 만들고 기록해 둔 것들이 또 이렇게 고마운 앨범이 되어주네요.
생각해 보면 앨범을 만들 때 마다 늘 사랑과 이별에 관해 많이 이야기 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삶이라는 게 결국 무언가를 정성 들여 사랑하고 그것들과 아프게 헤어지는 일들의 반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나아지고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다만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는 사랑과 이별 그 자체보다 사라지는 것들과 그 뒤에 남는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물어 가는 것들과 닳아 없어지는 것들, 그리고 유한한 것들. 그리고 사라진 것 같지만 아직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 들.
늘 무언가는 남잖아요.
누군가의 말투라든가,
웃는 모습이라든가,
같이 걷던 길이라든가,
그날의 노을 같은 것들.
한참 지나서 돌아보면 그런 것들이 결국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것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언가가 끝나는 것과 사라지는 일은 조금 다른 게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무언가가 끝나도 아직 남아 있는 것들.
여운이거나 잔해이거나 상처이거나 혹은 추억이거나 미련이거나 아무튼 남아 있는 것들.
어쩌면 우리는 그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앨범은 그렇게 무언가가 있었던 흔적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런 사랑과 이별의 모든 구성 요소들은 우리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관측되고 관찰되고 기록되어 우리의 마음이나 기억 어딘가에 저장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번 앨범은 그렇게 관측되고 기록된 제 감정의 데이터들을 미지의 우주 어딘가로 날려 보내는 작업 같기도 합니다.
분명히 있던 것들이 어느 날 사라진다고 해도,
무언가는 남는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조금 덜 쓸쓸하기도 하고요. 이 음악들 역시 이렇게 제 손을 떠나도 어딘가에는 남겠죠.
한 곡 한 곡 짧은 설명을 해 보려 하는데요. 그냥 만든 사람의 소소하고 개인적인 메모 정도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 다정하지 말아요
2.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던
3. 슬픔의 최소 단위
4. 장면들
5. 새삼스레 무언가가 좋아진다는 것은
6. 우리는 한때 모두 서로의
7. 사랑은 그런 것
8. 잠수
9. 어느새 사랑이
10. 깊고 푸른 밤
1. ‘다정하지 말아요’ (작사 심현보 작곡 심현보 편곡 norway elephant)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입니다. 단출하지만 감상적인 멜로디 라인의 곡이라 한참 동안이나 가사와 편곡을 고민했던 노래입니다. 누군가와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다정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의 가사 입니다. 어쩌면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힘들테고 조금은 미워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게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생각해 보았거든요. 하지만 어떤 헤어짐을 겪었다 하더라도 지나고 보면 다정했던 순간들은 있었기 마련이죠. 믿기 힘든 이별의 순간도 그리고 얼마간의 아픈 시간들도 어쩌면 모두 사랑의 일부 아니었을까요? 어느 날 아침 문득 창문을 열면서 ‘그래 좋은 사람이었다’ 생각할 구석이 하나쯤은 있었을 테니까요. 그거면 된거죠. 쓸쓸한 퀄텟 편곡으로 시작해서 점차 고조되어가는 스트링 사운드와 어쿠스틱 기타의 밸런스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넘치지 않고 과하지 않게, 말하자면 최대한 담백하게 부르려 애쓴 노래입니다.
2.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던’ (작사 심현보 작곡 심현보 편곡 norway elephant)
이번 앨범의 더블 타이틀 곡입니다. 가장 먼저 녹음을 시작했고 가장 오래 녹음했고 가장 많이 수정하고 고친 노래이기도 합니다. 애정이 많은 곡이라 그랬을까요. 뜻대로 되지 않아 중간에 속도 많이 끓인 곡입니다. 어느 봄 즈음 동네 아파트 앞에서 마주 서 있던 어떤 남녀를 우연히 보고 나서 가사를 쓰게 된 곡이었어요.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던 둘은 어느 순간 각자의 방향으로 걸었는데요. 그 둘이 헤어지는 중이었던 건지 아님 그냥 다툰 정도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 가여운 반짝거림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었나 봅니다. 저에게도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었겠지요. 우리는 그렇게 사랑이라고 부르던 반짝이던 순간의 기억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내게 기대오던 기울기, 오르내리던 두근거림, 흐르던 눈물의 속도, 울먹이던 어깨의 리듬’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던 것들은 이렇게 사소하지만 관측되고 기록되듯 각자의 기억 속 어딘가에 저장되겠죠. 밴드셋과 오케스트라 그리고 일렉 기타와 적당한 템포감이 주는 소프트한 모던락의 분위기를 내고 싶었어요. 고민하고 힘들었던 레코딩과 수정의 과정을 거치고 도착한 결과물이라 그런지 더 애틋한 곡이 되었습니다. 그 아파트 앞 남녀는 그 후 다시 만나게 되었을까요?
3. ‘슬픔의 최소 단위’ (작사 심현보 작곡 심현보 편곡 norway elephant)
꽤 오랫동안 가사를 썼던 곡입니다. 기억과 슬픔의 구성요소들, 일상에 흩어져있는 그 작은 조각들을 나누고 또 나누면 언젠가는 사라지고 없어질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된 가사입니다. 아마도 무언가는 남겠죠. 나누고 또 나눠도. 전반부의 어쿠스틱 기타도 여러 번 다시 녹음했고 후반부의 빌드업된 전조 파트의 음역 때문에 키도 여러 번 바꿨던 곡이예요. 사운드가 어디서 터져야 하는지 엄청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제일 마지막 후렴에서야 무언가 감정을 드러내는 조금 더딘 곡이 되었어요. 그게 아쉽기도 하고 한편 맘에 들기도 했습니다,
폭풍처럼 거대한 슬픔도 모래알만큼 미세한 슬픔도, 결국 슬퍼하기에는 늘 충분한 이유가 되는 거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충분히 슬프고 나서야 낫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4. ‘장면들’ (작사 심현보 작곡 심현보 편곡 norway elephant)
가끔, 한 번에 쭉 써지는 곡이나 가사가 있는데요. 흔한 일은 아닙니다. 이번 앨범에서는 이 곡이 그랬어요. 멜로디의 흐름도 가사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끝나서 나일론 기타 중심의 소편성 편곡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습니다. 가사의 중심에 노을에 관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생각해 보니 이 곡 뿐만 아니라 이번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예전엔 노을을 봐도 그리 큰 감흥이나 울림은 없었는데 요즘은 한동안 바라보게 되거든요. 아마도 저무는 것들에 대한 연민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헤어짐도 노을도 무언가의 끝무렵은 그래서 더 아름답고 애틋할까요.
5. ‘새삼스레 무언가가 좋아진다는 것은’ (Feat. 주식회사 김현철 이한철 정지찬)
(작사 심현보 작곡 심현보 편곡 norway elephant)
살다 보면 싫었던 게 좋아지기도 하고 좋았던 게 싫어지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늘 한결같진 않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 변화들이 당혹스럽거나 황당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늘 기분 좋은 순간들은 시들했던 무언가가 다시 좋아지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음식이건 취미건 음악이건 하물며 사람까지도, 무언가가 다시 좋아지는 과정은 반갑고 고맙죠. 그리고 사랑하는 한 사람이 꽤나 많은 것들을 새삼스레 좋아지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그런 순간들이 일상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곡을 만들고 그런 이야기들을 가사로 쓰고 나니 떠오른 건 ‘주식회사’ 의 멤버들이었습니다. 현철형, 지찬이, 한철이. 예전만큼 자주 보지 못하지만, 가끔 안부만 들어도 반가운 사람들. 전화 한통에 흔쾌히 참여해준 멤버들 덕분에 시끌벅적 즐겁고 재미있는 녹음이었습니다. 음악하는 재미도 결국은 사람이네요. 녹음 후 치맥은 필수였습니다.
6. ‘우리는 한때 모두 서로의’ (작사 심현보 작곡 심현보 편곡 norway elephant)
가장 써 둔지 오래된 곡입니다. 이번 앨범에는 피아노 발라드 형태의 곡들이 상대적으로 적은데, 아마도 포크와 락의 사이 어딘가에 이번 앨범의 정체성을 두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이 곡은 녹음도 믹싱도 혼자만 따로 진행되어서 다른 곡들과는 뭔가 느낌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가사의 의미나 분위기 만큼은 앨범을 관통하는 어떤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첫 가사처럼 ‘있었던 일들이 없던 일로, 존재하던 순간이 희미한 기억으로’ 이 문장이 어쩌면 이번 앨범의 주된 정서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피아노와 스트링 만으로 이루어진 감정의 레이어드를 많이 신경썼어요
7. ‘사랑은 그런 것’ (Feat. 이지형) (작사 심현보 작곡 심현보 편곡 norway elephant)
2007년 발표했던 2집 앨범의 타이틀 곡입니다. 새 앨범을 만들며 이곡을 다시 편곡해서 녹음하자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전부터 꼭 같이 한곡 부르고 싶다고 생각했던 지형이에게 부탁을 했어요. 너무 반갑게 제안에 응해주어서 즐겁게 같이 녹음했습니다. 역시나 노래 잘하는 지형이 목소리와 너무 잘 어울려서 같이 하길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가끔 둘의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저희 둘의 목소리가 정말 좀 닮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벌써 20여년이 지난 노래를 다시 부르는 기분이 신기하고 고마웠어요.
8. ‘잠수’ (작사 심현보 작곡 심현보 편곡 norway elephant)
한참 프리다이빙을 하던 시절 스케치하고 써둔 곡과 멜로디였어요. 무언가를 잊기 위해 낮게 침잠해있는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물속에 있을 땐 그 고요가 늘 좋고 평화로운데 어쩌면 수면위의 시간에 지치고 고단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몽환적이고 우울한 사운드와 분위기가 물속처럼 유지되는 곡입니다
9. 어느새 사랑이 (작사 심현보 작곡 심현보 편곡 norway elephant)
어쩌다보니 이번 앨범은 피아노 발라드 곡이 별로 없는 앨범이 되었는데 그중 한곡입니다.
저로서는 모든 노래가 어렵지만 특히나 이런 피아노 발라드 곡의 집중력은 늘 쉽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나직하게, 말하듯 이어지는 가사의 무드나 분위기를 잘 표현해 보고 싶어서 작업실에서 직접 노래도 녹음해 보고 여러 가지로 공을 들였어요. 빌드업 되어 가는 후반부의 분위기가 맘에 들어서 몇 해 전 발매했던 싱글 곡 중에 골라 앨범에 다시 수록했습니다.
10. 깊고 푸른 밤 (작사 심현보 작곡 심현보 편곡 norway elephant)
앨범 중 유일한 업템포 곡입니다. 드라이빙 뮤직이나 펑키한 그루브의 음악을 별로 많이 작업 해보지 않아서 몇 해전 여름 밤 정서를 리드미컬하게 표현해 싱글로 발매했던 곡이에요. 리듬이나 사운드도 그렇지만 코러스라인 편곡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어서 한참 동안 즐겁게 녹음했던 곡입니다. 앨범에 한곡 쯤 신나고 시원한 곡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수록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