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이 거세된 혁명은 위험하다. 하지만 혁명적 열정이 실종된 성찰은 감동이 없다. 저 질풍노도 같았던 1990년의 < 아,대한민국... > 에서 < 92년 장마, 종로에서 > 를 지나 < 정동진 > 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며 정태춘 박은옥 부부는 지금 여기에 이르러 <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 힘겨운 의제를 우리에게 풀어 놓는다.
이 부부는 웅변하는 순간에도 긴장을 잃지 않았으며, 회의하던 순간에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풍자의 사설을 질펀하게 발표할 때조차 삶과 사회에 대한 깊은 신뢰를 동반했었다. 한 세기 혹은, 한 천년을 뒤로 하고 새롭게 밟고 선 시간의 문턱에서 우리의 정태춘과 박은옥은 성찰과 열망의 속내를 직관적으로 포착한다. 그것은 어느 영화관 안에서, 압구정동과 청담동에서, 고창의 선운사에서, 다시 정동진에서, 그 정동진과 태평양을 마주보고 있는 바하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아니 그 반대편 단둥 항에서, 그리고 자신의 아파트 안을 어지러이 관통하며 우리가 상실한 내면의 ‘빈산’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 정신의 균형점을 뒤흔든 자본의 속도 그 반대편에서 정태춘은 쏜살같은 산문의 비수를 꽂으려 몸부림 치고, 박은옥은 그 속도와 속도의 백열전 갈피에서 운문의 시정을 고요하게 펼쳐 놓는다. 그래서 이 앨범은 이들이 발표한 그 어떤 앨범보다도 혼란스럽고 동시에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