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광토끼(Neon Bunny) [Happy Ending] (2012)
몇 년 전까지 한국 땅에서 ‘여성 싱어 송라이터’를 논할 때면, 어떤 전형성 같은 것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대개 낭만과 서정을 알리바이로 삼아온 여성 싱어 송라이터 음악들 중 일부는, 정형화된 문법 속에서 과도하게 편안하거나 필요 이상의 투명함으로 저 자신을 변호하고 있었다. 미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태만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그런 음악들의 황사 속에서, 나는 때로 숨 막혀서 불편했다.
이런 측면에서 야광토끼(본명: 임유진)의 2011년 데뷔작 [Seoulight]를 잊지 못한다. 그런 주요한 경향과는 동떨어진 외부의 서클에서 진입한 그의 음악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을 장식했던 우리 가요계의 어떤 흐름을 떠올리게 해줬다. 바로 그 당시, 절정을 향해 치달으며 인기를 싹쓸이했던 ‘걸 팝’ 사운드다.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불렀던 이지연이 인디 신에서 데뷔해 음반을 내놓는다면 딱 그런 스타일이지 않았을까. 이지연의 자리에 다음의 이름들을 대입해도 결과물은 엇비슷하다. 강수지 & 하수빈. 그렇다고 그의 데뷔작을 오로지 ‘복고’의 관점에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정리하자면 야광토끼의 음악은, 90년대의 풋풋한 감수성과 프로페셔널한 레코딩, 그리고 2000년대 일렉트로 팝과의 결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야광토끼는 테마를 담고 있는 부분의 멜로디와 가사를 반복해서 들려주는 방식을 선호했다. 많은 팬들이 야광토끼의 1집을 들으며 “꼭 아이돌 음악을 듣는 것 같다”는 부기를 남겼던 이유다.
야광토끼는 자신의 첫 번째 결과물의 소리에 많은 공을 기울였다.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은 주인공은 미국인 프로듀서 클리프 린(Cliff Lin)이다. 우리에게는 게임 [콜 오브 듀티]의 음악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임유진이 멜로디와 소스를 만들어서 보내면, 클리프 린이 이를 다듬어 편곡하고 녹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믹스와 마스터링을 해외에서 하는 방법은 최근 인디 신에도 가끔 보이는 방식이지만, 아예 해외 프로듀서가 전담해서 제작한 케이스는 보기 드문 사례다. 자연스레 이 앨범은 아마추어리즘의 미덕을 갖춘 멜로디와 프로의식이 한껏 발현된 사운드의 결합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만듦새를 과시했다.